조선시대 지방의 슬롯 꽁 머니(留鄕所)를 통제하기 위하여 서울에 설치한 행정 기구이다. 지방 출신의 재경관료(在京官僚)로 임원을 구성하여 각 지방의 이해를 대변하고 그 지역의 기강을 장악했다. 경재소 임원은 정부의 고관으로서 자기 출신 지역의 경재소를 관장하여, 그 지역의 슬롯 꽁 머니 품관을 임명, 감독하며, 출신 지역과 정부와의 중간에서 여러 가지 일을 주선하였다. 고려시대 사심관(事審官)과 비슷한 기구이다. 임진왜란 후 수령권의 강화로 슬롯 꽁 머니의 지위가 격하되면서 이를 통할하던 경재소도 1603년(선조 36) 영구히 폐지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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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려 말 지방의 중소토호(中小土豪) 출신으로 중앙에 진출한 관원들 가운데는 그 뒤 중앙에 그대로 남은 거경품관(居京品官)과 중앙에 머무를 필요성이 없어 다시 향촌에 돌아간 슬롯 꽁 머니품관(留鄕品官)으로 구분되었다.
유향품관들은 전과 마찬가지로 향촌의 주도권을 누리기 위하여 슬롯 꽁 머니를 조직했는데, 수령에 대한 능멸 행위가 잦아 건국 초기 중앙집권체제 확립에 문제가 되어 폐지되었다. 그러다가 1428년(세종 10)<슬롯 꽁 머니작폐금방절목 留鄕所作弊禁防節目>을 마련, 제재를 위한 법적 · 제도적 조치와 함께 다시 설치되었다.
슬롯 꽁 머니를 통제하기 위하여 거경품관으로 서울에 설치한 것이 ≪태종실록≫에 처음 보이는데, 1435년 대폭 정비, 강화하여 제도화한 것이다.
현직 관원으로 2품 이상은 아버지의 내 · 외향, 할아버지의 외향, 증조부의 외향, 어머니의 내 · 외향, 처의 내 · 외향 등 8향(鄕), 6품 이상은 6향(8향에서 처의 내 · 외향 제외), 참외(參外)는 4향(부 · 모의 내 · 외향), 그리고 무직의관자제(無職衣冠子弟)도 2향(부 · 모의 내향)의 임원이 될 수 있게 하였다.
임원은 동향인(同鄕人) 가운데에서 좌수(座首) 1인, 참상별감(參上別監) 2인, 참외별감 2인을 두었다. 군현의 읍호(邑號)의 승강(昇降) · 합병(合倂) 등에 관여하거나 공물의 상납에 책임을 지기도 했으나, 수령의 정사에는 간섭할 수 없었다.
그럼에도 불구하고 폐단은 많았다. 세조 때 우의정홍윤성(洪允成)은 홍산현(鴻山縣)의 슬롯 꽁 머니를 맡자 현감을 자의로 천거하고 임명하였다. 또 그의 노복들을 호장(戶長) · 형방(刑房)으로 앉혀 홍산이라는 하나의 읍을 마치 자기의 사유지처럼 여겼다.
성종 때 심응(沈膺)은 김포현(金浦縣)의 슬롯 꽁 머니를 맡아 향리를 침탈하고 수령을 매도하며 민전(民田)을 점탈하였다.
이와 같이, 중앙의 관인 사회에서 주도적 지위를 차지한 훈신(勳臣) · 척신(戚臣) 계열은 연고지의 경재소를 관장하면서 그들의 사적 경제기반을 확대하였다. 또한, 지방 관리와의 개별적 연결을 통해 슬롯 꽁 머니를 장악함에 따라 사림들은 그에 맞서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고, 그 결과 사화로 비화하게 된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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